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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cism Walter Benjamin’s Theses on the Philosophy of History 2012/11/07 09:52 by 조현수

Walter Benjamin’s Theses on the Philosophy of History


Theses on the Philosophy of History(이하 역사철학테제)가 쓰인 사회적 배경
    Benjamin은 1938년 덴마크로 추방된 Brecht를 방문하나 그러는 동안 나치 정권은 유대계 독일인들의 시민권을 박탈했고, 국적을 잃은 Benjamin은 프랑스 정부에 의해 체포되어 3개월 동안 포로수용소에 구금된다.

    1940년 1월 파리로 돌아올 때 까지 그는 역사철학테제를 썼다. 6월 13일, 독일군이 프랑스 방어선을 격파하면서 집에 있던 Benjamin을 체포할 것을 명했다. 8월에 Benjamin은 Horkheimer가 그를 위해 얻어낸 미국 여행 비자를 받게 된다. 게슈타포에게서 빠져나간 Benjamin은 스페인을 경유하여 당시 표면상으로는 중립국이었던 포르투갈로부터 미국으로 갈 계획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Benjamin은 프랑스-스페인 국경을 무사히 넘어 스페인 북동부 Catalonia의 해안 마을인 Portbou에 도착했다. 당시 스페인의 총통이었던 Francisco Franco 정부는 그와 같은 난민의 모든 교통 비자를 취소시켰고 Benjamin이 소속된 유대 난민 단체를 포함한 이들을 프랑스로 돌려보낼 것을 명했다. 그 후 나치 정권의 손에 넘어갈 거라 생각한 Benjamin은 1940년 9월 25일 밤 모르핀 알약 과다 복용으로 자살한다. Portbou에서의 공식적인 사망 기록은 1940년 9월 26일이다.

    Benjamin은 Adorno와 Brecht의 아이디어와 굉장히 잘 맞아 떨어졌으며 Adorno와 Horkheimer가 뉴욕에 있었음에도 두 사람의 통솔 하에 있었던 프랑크푸르트 학파로부터 종종 재정적인 지원을 받기도 했다. Benjamin의 작업에서 Brecht의 Marxism, Adorno의 비평 이론, Gerschom Scholem의 유대 신비주의가 갖는 차이점이 해결되진 않았지만 세 사람 모두 Benjamin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게다가 Paul de Man은, Benjamin 글쓰기의 지적 범위가 이들의 세 가지 지성적 전통 사이로 역동적으로 흘러가며 이들을 나란히 세우며 비평을 이끌어낸다. 그 모범 사례가 바로 역사철학 테제이다.1)”라고 평한다.

    역사철학테제 혹은 On the Concept of History(역사의 개념에 관하여)는 1940년 초반 써졌다. Benjamin의 가장 잘 알려진 글 중 하나이면서 가장 논란이 있는 글이기도 하다. 20개의 짧은 글로 이루어졌으며 Benjamin은 Vichy France로부터 도피하는 동안 이 글들을 작성했고, 그가 1940년 자살한 스페인으로 도피하기 직전 완성되었다. Benjamin은 철학자 Hannah Arendt에게 에세이의 복사본을 우편으로 보냈으며 Arendt는 Adorno에게 그것을 주었다. Benjamin은 에세이를 출판하지 말 것을 부탁했으나 ‘Walter Benjamin을 추모하며(Walter Benjamin zum Gedächtnis)’라는 제목의 등사판 소책자로 출판되었다. 1947년 Pierre Missac에 의해 프랑스어 번역본이 Les Temps Modernes라는 학술지에 실렸다. Harry Zohn의 영어 번역본은 Arendt가 편집한 Benjamin 에세이 모음집인 Illuminations에 수록되었다.3)

역사철학테제에 관한 분석
    Benjamin의 사유가 독특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가 사용하는 수사적이고 비유적인 언어들과 그의 이론이 체계적인 구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러한 비체계적인 사유는 그가 철학적 사유를 하되 철학자가 아니며 더욱이 역사적 사유를 하되 역사학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언어라는 무기를 가지고 철학과 역사가 접근할 수 없는 새로운 영역을 읽어내려고 한다.4) 

    역사철학테제는 Benjamin의 사상을 집대성하는 동시에,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대표되던 공식적 마르크스주의의 역사관을 갱신하는 중요한 개념들을 제시하고 있다. 역사철학테제에서 Benjamin은 Marxist 철학의 두 가지 주요 개념인 역사주의와 역사적 유물론에 대한 비판을 위해 시적이고 과학적인 유추를 사용한다. 이 글은 Klee의 그림에 대한 분석도 해설도 아니다. Klee의 그림에 빗대어서 Benjamin 자신의 역사관을 피력하는 글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Benjamin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역사적 유물론과 신학이다. 이 둘은 보통 대립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Benjamin은 이 둘을 하나에 놓으면서 논의를 전개한다. Klee의 그림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인용’한 것이다. 역사철학테제에는 처음에 체스 기계와 Klee의 그림과 같은 대상에 대한 묘사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 대상에 대응하는 비유를 역사에서 찾는다. 5)



영상1  Chess Robot The Turk

    1번 테제에서 Benjamin의 한 가지 해석은 과학적 객관성을 향한 Marx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역사적 유물론은 유사 종교적 사기꾼이었다는 점은 제시한다.6) Benjamin은 18세기의 유명한 체스 두는 장치였던 The Turk를 역사적 유물론의 비유로 사용한다. 그 기계는 기계를 조종하는 사람을 숨기고 있다. 스탈린주의와 파시즘이 발흥하던 역사적 반동의 시기에 노동계급의 승리를 약속하는 역사적 유물론은 초라하고 궁색한 논리에 빠질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역사적 유물론은 더 이상 쓸모없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했다. 그러나 “‘어차피 모습을 드러내어서는 안 되는 신학’이라는 난쟁이를 고용한다면 누구와 겨루어도 이길 수 있을 것이다”는 것이 Benjamin의 논리였다.7)
    그러나 작가인 Michael Löwy는 Benjamin이 ‘역사적 유물론’에 인용부호를 사용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용부호의 사용과 이것이 사용된 방법은 이 자동장치가 ‘진짜’ 역사적 유물론이 아니며 무언가에 의해 그 이름이 부여되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우린 ‘그게 누구야?’라고 물을 수 있다. 그에 대한 대답은, 그것이 그가 살던 시절에 있던 Marxism의 홍보기획관임이 틀림없는데, 바로 the Second and Third International의 이론적 지도자다.

그림 1 Angelus Novus

    역사주의에 대한 Benjamin의 한 가지 열쇠는 ‘진보의 연속체로서의 과거에 대한 부정’이다. 이 모습은 11번 테제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과거와 ‘진보’에 대한 Benjamin의 대안적 시각은 Paul Klee의 그림인 1920년 작, Angelus Novus를 미래에 등을 돌린 “역사의 천사”로 차용한 9번 테제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우리들 앞에서 일련의 사건들이 전개되고 있는 바로 그곳에서 그는, 잔해 위에 또 잔해를 쉼 없이 쌓이게 하고 또 이 잔해를 우리들 발 앞에 내팽개치는 단 하나의 파국만을 본다.(중략)우리가 진보라고 일컫는 것은 바로 이러한 폭풍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Benjamin은 혁명적 미래를 예견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던 Marxist의 역사적 유물론을 뒤집어버리고, 역사적 유물론의 진정한 과제는 그의 말을 빌리자면 “과거를 구하는 것(to save the past)”이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9) 역사의 천사라는 것은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는 역사적 현실, 상황을 뜻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천사는 결코 새로운 것으로 눈을 돌리지 않는다.
    새로운 천사는 자유롭지 않다. “천국에서 불어오는 폭풍”이라는 필연성에 꼼짝없이 사로잡힌 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미래로 뒷걸음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폭풍을 일컬어 Benjamin은 ‘진보’라고 한다. 진보의 필연성, 이것은 바로 언제나 체스에서 이기는 기계장치이기도 하다. 첫 번째 테제에서 Benjamin은 이 기계장치를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신학이라는 곱사등이 난쟁이라고 지적했다. Klee의 그림에 대한 Benjamin의 진술을 통해 유추한다면, 이 신학은 단순하게 진보에 대한 ‘믿음’ 따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진보는 믿고 말고 할 것이 없다. 이것은 그냥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새로운 천사는 역사 자체이다.

    반동의 잔해더미가 쌓여가더라도 역사는 미래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 과정을 구태의연하게 “진보”라고 규정하는 태도를 Benjamin은 거부한다. “곱사등이 난쟁이”에 해당하는 것은 천국에서 불어오는 폭풍이다. 이 폭풍은 멈출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는 역사라는 새로운 천사를 미래로 밀고 가는 힘이다.10)

    Benjamin에 의하면 “역사주의가 과거에 대한 ‘영원한’ 이미지를 제시한다면, 역사적 유물론자는 과거와의 유일무이한 경험을 제시한다.” Benjamin은 역사의 ‘영원한 이미지’라는 아이디어에 반대하면서 자립적인 경험으로서의 역사라는 아이디어를 선호한다. 그러므로 Benjamin은 6번 테제에서 “과거를 역사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것이 ‘원래 어떠했는가’를 인식하는 일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위험의 순간에 섬광처럼 스치는 어떤 기억을 붙잡는다는 것을 뜻한다.”라고 서술한다.

    Benjamin은 파시즘과 허무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역사에 대한 테제를 썼다. 10번 테제에서 Benjamin은 파시즘의 원천인 허무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사유’를 제시하려 한다. “수도원이 수사들에게 명상을 위해 지시하는 대상들은 세상과 세상사들로부터 그들을 떨어지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진술은 역사의 진보라는 형상에 집착하는 습관적인 인식에 대한 비판이다.

    11번 테제에서 Benjamin은 독일 노동자 계급이, 자신들이 시대의 물결을 타고 간다고 생각하는 타락, 즉 노동과 진보의 이데올로기적 개념에 젖어있었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사유의 과정의 의도는 정치적 관심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을 그 정치가들이 씌워놓은 그물망, 즉 습관적 인식의 그물망에서 풀려나도록 하는데 있다. 이러한 관찰은 정치가들의 진보에 대한 완고한 믿음, 그들의 ‘대중 기반’에 대한 믿음, 그리고 통제 불가능한 기구에 노예처럼 종속되어 있는 모습이 동일한 사안의 세 양상이었다는데서 출발한다. 이러한 세 양상을 만들어내는 사안은 “타협주의”이다. 그리고 이 타협주의를 만들어내는 원인은 ‘진보적인’ 노동 개념이다. 사회민주주의를 타락시킨 것은 정치적 전술뿐만 아니라 “경제적 관념들”에 들어있던 타협주의였다. 고타 강령은 노동을 “모든 부와 모든 문화의 원천”이라고 정의하는데 Benjamin에게 노동은 “새 시대의 구세주”가 아니었다. 노동에 대한 이런 견해를 양산하는 태도를 그는 속류 마르크스주의(Vulgar Marxism)라고 비판한다.

    이런 노동의 개념은 “자연 지배의 진보만을 보고 사회의 퇴보는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노동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한 진보는 곧 자연의 착취에 불과하다. 진보의 결과에 철없이 만족하면서 사람들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착취에 그 자연의 착취를 대비시켰다. 즉 계급의 착취와 자연 착취를 서로 무관한 것으로 파악함으로써 실증주의가 만들어놓은 타협주의의 덫에 걸려들고 말았다는 것이다. 타락한 노동 개념은 자연을 “공짜”라고 받아들이게 만드는데, Benjamin은 결국 이런 관점이 파시즘과 허무주의를 초래했다고 본다.

    이를 통해서 억압되는 것은 “억압받는 계급”이라는 “의식”이다. 피억압자로서 자신을 자각해야 할 노동자들을 “미래 세대들의 구원자 역할”에 묶어놓음으로써, 사회민주주의는 노동계급의 힘줄을 잘라버리고 있다. 노동계급의 투쟁을 약화시키고 “최후의 억압 받고 복수하는 계급”으로 자신의 지위를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 사회민주주의의 타협주의이다. 이 타협주의로 인해서 노동계급은 “해방된 자손의 이상”보다도 “억압받는 선조의 이미지”에서 자양분을 취하게 되었다. 노동계급이야말로 ‘새로운 천사’인 셈이지만 진보라는 타락한 노동 개념에 사로잡혀서 파시즘의 도래를 묵과하거나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Benjamin은 바로 역사의 진보에 대한 습관적 믿음을 비판하는 것이다. 13번 테제를 통해 Benjamin이 염두하는 비판의 대상은 ‘역사를 균질하고 공허한 시간을 관통해서 나아가는 진행의 과정으로 보는 진보적 사관의 시간 개념 자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림 2 Benjamin 역사관의 도식화

    역사철학테제에서 Benjamin이 비판하는 역사주의는 과거를 잘라내고 이어 붙인다. 이런 식의 역사적 타협주의로부터 역사 인식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올가미가 생겨난다. 당시의 독일 국민 뿐만 아니라 우리들 또한 이런 타협주의 때문에 시간 혹은 역사라는 거대한 바다를 보지 못한 채 진보라는 화려한 배가 지나간 자리에 생기는 물결만을 역사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시선을 통해 생각되어야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위기 상황(state of emergency)"을 알아채는 것이다. 우리는 진보, 혁명의 시대에서 윤택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느끼지만 언제나 위기에 놓여있다.

그림 3

    위 그림은 Benjamin 이해에 좀 더 도움이 되었으면하는 마음에서 내가 구글링을 통해서 찾아낸 그림이다. 역사철학테제에 걸맞는 그림이나 사진을 찾아내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데 시간이 아깝지 않게 꽤 마음에 드는 그림이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거대한 숲에 들어와 있는 여행자다. 그 숲에는 길이 나 있고 저 멀리 진보라는 빛이 아름답게 광채를 뿜어내고 있다. 양 옆으로 놓인 타협주의라는 울창한 나무들 때문에 그 너머로 무엇이 있는지를 모르겠다. 그곳엔 예쁜 꽃밭이 펼쳐져 있을지도 모르지만 황폐한 사막이 있을지도, 가파른 절벽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린 그저 그 위험을 느끼지 못하고 단지 아름다운 숲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과연 길을 따라 계속해서 걸어 들어가면 그곳엔 무엇이 있는가? 길을 벗어난 나무들 너머엔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숲속의 아름다움에 취해있는 것을 당장 멈추고 냉철하게 "위기 상황"을 바라볼 때이다.


참고 자료

Benjamin, Walter. Illuminations. N.Y: Random House, 1988.

1)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Walter_Benjamin, 2012
3, 6, 9)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Theses_on_the_Philosophy_of_History,
4) 「<번역가의 과제>와 <역사철학테제>를 통해서 본 벤야민의 언어철학」, p1
5, 7, 10) 이택광, 「앙겔루스 노부스」, http://wallflower.egloos.com/3650561
11) 발터 벤야민, 최성만(역).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서울, 도서출판 길, 2008.

영상 1 Chess Robot The Turk, http://youtu.be/RdT4yG8wczQ
그림 1 http://en.wikipedia.org/wiki/Angelus_Novus
그림 3 http://www.goodfon.com/wallpaper/4711.html


덧글

  • phokary 2013/12/19 00:22 # 삭제 답글

    아 정말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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